얕은 지갑, 깊은 와인

‘비자발적 홈와족’의 돈 없어도 행복한 와인라이프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한다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순수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다'와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다'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좋아하면서 사사로운 욕심을 내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게다가 '다른 것', 그러니까 금전적인 것을 비롯한 현실적 문제들이 끼어들지 않은 채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데 『얕은 지갑, 깊은 와인』을 읽다 보면, 매번 사사로운 욕심을 내고 항상 돈 생각을 하면서도 와인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차라리 욕심이 나고 금전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하기에 그 사랑이 더욱 활기를 띠는 느낌입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만족스럽게 와인을 즐기려다 보면 발품을 팔고, 공부를 하고, 함께 마시는 사람의 취향을 배려하게 되니까요.  와인은 욕심을 내다 보면 끝이 없는 장르입니다. 수백만 원짜리 보틀을 척척 사서 딸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게 아닌 한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언제든 가성비를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성비는 같은 와인을 얼마나 싸게 구했느냐에서도 나오고, 그 와인에 대해 얼마큼 알고 마셨느냐에서도, 누구랑, 어디서, 어떤 기분으로 마셨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얕은 지갑, 깊은 와인』은 이렇게 넓고 깊은 의미의 '가성비 와인 라이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있어 보여서" 시작한 와인이 생활의 일부가 되기까지 박광현 작가가 매대 앞에서 보낸 숱한 고민의 시간들이 이 책에 담겼습니다. 비싼 레스토랑 대신 집에서 맛과 분위기를 충분히 누리기 위해 쌓아온 그만의 "와인 레시피"들을 훔쳐보는 재미도 지나칠 수 없습니다. 와인에 대한 쉽고 즐겁지만 결코 얕지 않은 이야기들은 와인의 높은 가격대와 복잡한 이름 앞에 망설이는 이에게는 용기와 정보를, 나름대로의 즐거운 와인 생활을 이미 구축한 이에게는 공감의 미소를 전합니다. 와인에 특별한 관심이 없어도 물론 괜찮습니다.이것은 결국 무언가를 사랑하며 알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