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살러 왔습니다

(비자발적) 디지털 노마드의 강릉 생활기 "노트북과 일거리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유명한 드라마 대사만큼이나 낭만적으로 들리는 이 말은 우리가 '디지털 노마드'에 대해 가진 이미지를 대변합니다. 잿빛 도시의 답답한 빌딩 숲에서 일하는 대신 노트북 하나 달랑 들고 산으로, 바다로 일거리를 데려가는 사람들. 업무 전후로 해수욕과 캠핑을 즐기고, 새로운 인연에 기꺼이 스스로를 내맡기는 자유로운 영혼들.  그러나 '갈 수 있어'를 '가야 해'로 고치는 순간 이 말의 뉘앙스는 크게 달라집니다. 밥벌이의 기회를 주는 곳이라면 얼마나 멀든 달려가야 하는 고달픈 인생이 떠오르고, 그런 인생은 '디지털 노마드'라는 세련된 명명과 어울리지 않아서 무언가 설명을 덧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강릉의 한 콘텐츠 회사에서 에디터로 일하게 된 변준수 작가는 자신을 "(비자발적) 디지털 노마드"라고 정의합니다. 최근 워케이션으로 뜨겁게 떠오른 강릉이지만, 작가가 본래의 생활 반경을 벗어나 이 도시로 온 것은 어느 정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원격 근무가 가능하다고는 해도 대부분의 시간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무실에 출근했으니 완벽한 '노마드'라기에도 어색한 구석이 있었지요.  그래도 드넓은 바다와 탁 트인 하늘이 있는 강릉에서는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지 않느냐고요? 아쉽게도 (비자발적) 디지털 노마드 생활은 우리 상상처럼 쏟아지는 별빛이나 귀를 간지르는 파도 소리, 설레는 만남들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다. 피곤한 채로 출근해서 녹초가 되어 퇴근하는 직장인의 일상은 서울에서나 강릉에서나 크게 다를 바가 없으니까요. 다른 점이 있다면 일하고 사는 장소를 여행객과 현지인 사이, 그 어디쯤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렇게 중간 지대에 선 변준수 작가는 자신이 겪은 강릉의 다양한 면모를 『잠시 살러 왔습니다』에 담았습니다. '워케이션과 디지털 노마드의 도시' 강릉은 어떻게 변모하는 중일까요? 두부로, 커피로, 맥주로 핫한 이 도시도 인구 감소에서 비롯된 고민을 안고 있을까요?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한 정책과 사업들은 충분히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을까요? 무엇보다, 연고 없는 지역 도시에서 살며 일한다는 건 과연 해볼 만한 일일까요? 막연한 상상만으로 생활의 근거지를 바꾸는 것은 너무 무모한 도전이지요. 비싸고 팍팍한 서울의 삶을 피해, 혹은 얽매이지 않는 일상을 찾아 지역 이주나 디지털 노마드를 꿈꿔본 적 있다면 『잠시 살러 왔습니다』 속 변준수 작가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흐릿한 그림에 약간의 디테일을 더해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