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살린 좀비

좀비 소설가 정명섭에게 좀비는 어떻게 보면 ‘날 살린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좀비는 오랜 무명의 작가 생활 동안 자신에게 휴식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사람이 정신적인 안정을 찾는 건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돈을 많이 벌 때, 그리고 또 하나는 힘든 현실을 잊어버릴 만한 다른 일에 열중하는 것이다. 좀비는 작가에게 후자의 존재였다. 글쓰기에 힘들고 어려울 때, 출판사에서 연거푸 원고를 거절할 때, 통장이 비어갈 때, 밤새 한 줄도 쓰지 못할 때의 두려움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한다. 버티다 보면 기회가 오고 희망이 생길 것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지만, 막상 자신이 겪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때 정명섭 작가를 버티게 해준 게 바로 좀비였다. 작가는 좀비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구상하고, 그걸 위해 자료를 찾아봤다. 물론 당시 상황으로는 좀비가 등장하는 작품을 출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힘든 하루를 버틸 좋은 버팀목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돌이켜 보면 작가 자신이 언제부터 좀비를 좋아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보는 순간 빠져든 건 확실하다고 한다. 안 그랬다면 끈기없는 성격에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매달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좀비는 낯선 존재이지만, 조금씩 우리 안에 스며들고 있다. 조선 시대에 상투를 틀고 등장하고 있고, 우주복을 입고 나타나기도 한다. 인간과 연애를 하기도 하고, 뭔가 신인류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경우도 나온다. 좀비는 불길한 존재이지만, 많은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치적으로 경도된 집단이나 현대 소비 사회의 집단성과도 연결된다. 좀비는 두려운 존재이지만, 사람들이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작가는 20년 가까이 그런 과정을 지켜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다고 찬찬히 술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