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그의 음성은 확성기로 쩡쩡 울리면서 잔학이니 대량학살이니 추방이니 약탈이니 강간이니 포로고문이니 양민폭격이니 허위선전이니 불법침략이니 조약파기니 끝없이 열거하며 떠들고 있었다. 그의 연설을 듣노라면 처음에는 그저 그러려니 하다가 얼마 안 되어 열광해 버리게 된다. 연이어 군중들의 분노가 터지고 연사의 목소리는 수천 명의 목구멍에서 참지 못해 터져 나오는 짐승 같은 함성에 파묻혀 버린다. 학생들의 아우성이 가장 컸다. 그 연설이 한 20분 동안 계속됐을 때 전령이 급히 연단으로 오르더니 연사의 손에 종이쪽지를 건네주었다. 그는 연설을 계속하면서 그걸 펴 읽었다. 그의 음성이나 태도, 그가 말하는 내용까지 아무것도 변한 건 없었다. 다만 갑자기 이름만 달라졌을 뿐이다. 말은 없었으나 군중들 사이에 알았다는 듯, 조용한 파문이 번졌다. 오세아니아가 이스트아시아와 전쟁을 한다! 다음 순간 굉장한 동요가 일어났다. 광장에 장식된 깃발과 포스터가 모두 틀렸다! 그들은 상대를 잘못 알았다. 태업이다! 골드스타인의 부하들이 잠복활동을 했다. 아우성이 터지면서 벽에서 포스터를 뜯고 깃발을 조각조각 찢어 발로 짓밟았다. 스파이단이 비상한 활약을 해서 지붕 꼭대기로 기어올라가 굴뚝에서 휘날리던 장기(長旗)를 뜯었다. 그러나 2, 3분도 안 되어 모두 끝났다. 연사는 여전히 마이크 목을 잡고 어깨를 앞으로 내밀고 한 손은 하늘을 할퀴며 연설을 계속했다. 1분도 안 되어 군중들의 야수와 같은 분노의 함성이 다시 터져 나왔다. 대상이 바뀐 것 외에는 ‘증오’는 전과 똑같이 계속하는 것이었다.